AI 기초 및 활용 2회: AI의 역사 1 — 꿈의 시작
SVIL 「AI 기초 및 활용」 시리즈 2회차입니다. 모든 내용은 이미지 없이 본문 텍스트만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오늘의 질문: 이 꿈은 언제 시작됐을까?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 지금은 뉴스에서 매일 다뤄지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이 처음으로 진지한 학문의 문제가 된 순간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컴퓨터라는 물건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던 시절, 트랜지스터조차 갓 발명된 1950년의 일입니다.
오늘은 시간 여행입니다. 한 수학자의 도발적인 논문에서 시작해, 뉴햄프셔의 여름 워크숍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태어나고, 젊은 과학자들이 "한 세대 안에 끝난다"고 호언장담하던 황금기까지. AI라는 꿈의 1막을 따라가 봅니다. 스포일러를 하나 드리자면 — 이 이야기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오르다가, 절벽 앞에서 끝납니다. 절벽 아래 이야기는 3회차의 몫입니다.
2. 지난 회차 연결: 지도를 들고 떠나는 여행
1회차에서 우리는 지도를 그렸습니다. AI란 "지능이 필요한 과제를 기계로 수행하게 만드는 분야"이고, 그 안에 머신러닝이, 또 그 안에 딥러닝이 마트료시카처럼 포개져 있다고 했죠. 그리고 학습하지 않는 AI — 규칙 기반 AI — 도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만날 초기 AI는 바로 그 바깥쪽 인형, '학습하지 않는 AI'의 세계입니다. 데이터에서 배우는 머신러닝이 주인공이 되기까지는 아직 수십 년이 남았습니다. 그럼 1950년의 영국으로 갑니다.
3. 1950년, 한 편의 논문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철학 학술지 '마인드(Mind)'에 논문 한 편을 발표합니다. 제목은 「계산 기계와 지능」. 첫 문장부터 도발적입니다. 그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하죠.
당시 이 질문은 학문이 아니라 공상의 영역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들이 갓 등장해 포탄 궤도나 계산하던 시절이니까요. 그런 시대에 튜링은 기계의 '생각'을 진지하게 논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런데 그는 곧바로 벽에 부딪힙니다. 1회차에서 우리도 만났던 그 벽 — '생각'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가 없다는 문제였죠.
4. 질문을 바꿔버린 천재
여기서 튜링의 천재성이 빛납니다. 그는 정의할 수 없는 질문과 씨름하는 대신, 질문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를 버리고,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기계가 인간과 구별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가?"
이것이 그 유명한 모방 게임(Imitation Game), 오늘날 튜링 테스트라 불리는 아이디어입니다. 철학적 논쟁('생각이란 무엇인가')을 측정 가능한 실험('구별할 수 있는가')으로 바꾼 거죠. 1회차에서 배운 '작업 중심의 지능관' — 정의를 따지지 말고 수행을 측정하자 — 기억하시나요? 그 관점의 원조가 바로 이 순간입니다. AI라는 분야는 어떤 의미에서, 튜링의 이 질문 전환에서 태어났습니다.
5. 튜링 테스트의 구조
테스트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심사자가 두 상대와 문자로만 대화합니다. 한쪽은 인간, 한쪽은 기계입니다. 심사자는 누가 기계인지 모릅니다. 충분한 대화 후에도 심사자가 기계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 그 기계는 테스트를 통과한 겁니다.
문자로만 대화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목소리나 외모 같은 겉모습을 배제하고, 오직 대화의 지적 내용만으로 승부하게 만든 거죠. 튜링은 이 논문에서 예언도 남깁니다. 2000년경이 되면 기계가 5분 대화에서 평균적인 심사자를 30% 확률로 속일 수 있으리라고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기계가 생각한다'는 말이 반박당할 걱정 없이 쓰이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시대를 반세기 앞선 예측이었습니다.
6. 그리고 튜링이라는 사람
이 이야기에서 튜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설계한 해독 기계는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원형이 됐고요. 컴퓨터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의 이론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고, 튜링은 1952년 유죄 판결을 받아 강제 호르몬 치료를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1954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국 정부가 공식 사과한 것은 반세기가 지난 2009년, 사면은 2013년이었습니다. 오늘날 컴퓨터 과학 최고 권위의 상이 '튜링상'으로 불리는 건, 이 분야가 그에게 진 빚의 크기를 말해줍니다.
7. 튜링 테스트를 향한 반론들
튜링 테스트는 발표 직후부터 지금까지 논쟁을 몰고 다닙니다. 대표 반론이 바로 1회차에서 만난 중국어 방입니다. "구별되지 않게 대화한다"는 것이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규칙책만 잘 뒤져도 대화는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비판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튜링 테스트는 속임수를 측정한다는 겁니다. 기계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오타를 내고 계산을 일부러 틀리는 식으로 '인간인 척'을 잘해서 통과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2026년 현재, 최신 AI들이 사실상 튜링 테스트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도, 연구자들은 이제 이 테스트를 지능의 기준으로 잘 쓰지 않습니다. 흥미롭죠? 목표에 도달하고 보니, 그 목표가 지능의 증명이 아니었다는 것. 1회차의 'AI 효과'가 여기서도 작동한 셈입니다.
8. 1956년 여름, 다트머스

튜링이 씨앗을 뿌렸다면, 싹이 튼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1956년 여름, 뉴햄프셔주의 다트머스 대학에서 두 달짜리 여름 워크숍이 열립니다. 주최자는 당시 20대의 젊은 수학 조교수 존 매카시(John McCarthy). 훗날 'AI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인물입니다.
워크숍의 공식 명칭은 '인공지능에 관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 그렇습니다 —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순간입니다. 매카시가 연구비 제안서를 쓰면서 이 분야에 이름이 필요했고, 고심 끝에 이 단어를 골랐습니다. 참가자는 열 명 남짓. 이 작은 모임이 하나의 학문 분야가 공식적으로 태어난 자리로 역사에 남습니다.
9. 제안서의 한 문장
다트머스 워크숍 제안서에는 이 시대의 정신을 압축한 문장이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 "학습을 비롯한 지능의 모든 측면은 원리적으로 정밀하게 기술될 수 있고, 따라서 기계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에 담긴 대담함을 음미해 보세요. 지능의 모든 측면이 기계로 재현 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1회차에서 배운 지능의 다섯 부품 — 학습, 추론, 문제 해결, 언어, 지각 — 전부를 기계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죠.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었지만, 이 믿음이 없었다면 AI라는 분야는 시작되지 못했을 겁니다. 과학의 역사에서 가끔은, 근거보다 앞선 확신이 새 분야를 여는 법입니다.
10. 그 여름에 모인 사람들
다트머스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합니다. 주최자 매카시 외에, 훗날 MIT AI 연구소를 이끌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정보 이론의 아버지'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그리고 카네기공대에서 온 앨런 뉴웰(Allen Newell)과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 콤비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후 수십 년간 AI 분야의 지형을 만듭니다. 매카시는 스탠퍼드에, 민스키는 MIT에 연구 거점을 세우고, 뉴웰과 사이먼은 카네기멜런을 AI 명문으로 키웁니다. 사이먼은 나중에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는 인물이고요. 재미있는 건, 정작 워크숍 자체는 기대만큼 극적인 합의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기 아이디어에 몰두했죠. 하지만 이름이 생겼고, 사람들이 연결됐습니다. 분야의 탄생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11. 최초의 AI 프로그램: 로직 시어리스트
그런데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뉴웰과 사이먼은 다른 참가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러 온 게 아니라, 작동하는 물건을 들고 왔습니다. '로직 시어리스트(Logic Theorist)' — 역사상 최초의 AI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물건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한 일은 수학 정리 증명입니다. 당대의 저명한 수학 저서에 실린 논리학 정리들을 스스로 증명해냈고, 그중 하나는 원저자들의 증명보다 더 우아하다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기계가 인간 최고 지성의 영역인 수학 증명을 해낸 겁니다. 상징적인 사건이었죠. "지능이 필요한 과제를 기계가 수행한다" — 1회차에서 배운 AI의 정의가 처음으로 현실이 된 순간이라 할 만합니다.
12. 황금기의 개막
다트머스 이후 약 15년(1956~1974년경)을 AI의 첫 황금기라 부릅니다. 성과가 쏟아졌습니다. 수학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 대수학 문장제를 푸는 프로그램, 간단한 영어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이 연달아 등장했죠.
돈도 쏟아졌습니다. 특히 미국 국방부의 연구 지원 기관이 MIT, 스탠퍼드, 카네기멜런의 AI 연구소에 막대한 자금을 부었습니다. 냉전 시대였고, 기계 번역(러시아어!)과 지능형 시스템은 국가 전략 기술이었으니까요. 연구자들은 자유롭게 꿈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낙관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잠시 후에 숫자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황금기를 대표하는 발명품 몇 가지를 만나보죠.
13. 범용 문제 해결사라는 야심

로직 시어리스트의 성공에 고무된 뉴웰과 사이먼은 더 큰 야심을 냅니다. 이름부터 야심인 '범용 문제 해결사(GPS, General Problem Solver)' — 특정 문제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푸는 단일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거죠.
핵심 아이디어는 '수단-목표 분석'입니다. 현재 상태와 목표 상태의 차이를 파악하고, 그 차이를 가장 많이 줄이는 행동을 선택하고, 반복한다 — 사람이 문제를 풀 때 하는 방식을 본뜬 겁니다. GPS는 퍼즐이나 정리 증명 같은 잘 정의된 문제에선 실제로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범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현실 세계의 지저분한 문제들 앞에선 무력했죠. 이 야심과 좌절의 패턴 — 깔끔한 문제에선 성공, 현실에선 실패 — 을 기억해 두세요. 이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입니다.
14. 퍼셉트론: 미래에서 온 씨앗
같은 시기, 전혀 다른 접근이 하나 싹틉니다. 1958년 심리학자 프랭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이 발표한 '퍼셉트론(Perceptron)'입니다. 규칙을 짜 넣는 대신, 뇌의 신경세포를 본떠 스스로 배우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였죠.
퍼셉트론은 실제로 간단한 이미지 구분을 학습해냈고, 언론은 열광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걷고, 말하고, 보고, 쓰고, 자신을 복제하고, 자기 존재를 의식하게 될 전자 컴퓨터의 배아"라는 군 관계자들의 기대를 전했을 정도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접근이죠? 맞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딥러닝의 조상, 신경망의 첫 씨앗입니다. 하지만 이 씨앗은 곧 혹독한 서리를 맞고 수십 년간 땅속에 묻히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3회차에서, 그리고 이 씨앗이 어떻게 세상을 뒤집는지는 12회차에서 만납니다.
15. ELIZA: 최초의 챗봇, 뜻밖의 발견
1966년, MIT의 요제프 바이첸바움(Joseph Weizenbaum)이 역사상 최초의 챗봇으로 불리는 'ELIZA(일라이자)'를 만듭니다. 그중 유명한 버전은 심리 상담사를 흉내 냈어요. 작동 원리는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사용자의 문장에서 키워드를 찾아, 정해진 틀에 넣어 되묻는 게 전부입니다. "어머니가 미워요"라고 하면 "가족에 대해 더 말해보세요"라고 답하는 식이죠.
이해도, 기억도, 감정도 없는 단순 패턴 변환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이첸바움을 충격에 빠뜨린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이 ELIZA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겁니다. 그의 비서는 단둘이 대화하고 싶으니 방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했고, 어떤 이들은 ELIZA가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믿었습니다. 원리를 설명해줘도 소용없었죠.
이 현상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 — 기계의 표면적 언어 능력에 인간이 마음과 이해를 투사하는 현상. 이 단어를 꼭 기억하세요. 잠시 후 2026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16. 블록 세계: 축소된 낙원
황금기 후반의 대표작은 1970년경 MIT의 테리 위노그라드(Terry Winograd)가 만든 'SHRDLU'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화면 속 가상의 '블록 세계'에서 삽니다. 그 세계엔 색색의 블록과 상자뿐이에요. 사용자가 영어로 "빨간 블록 위의 초록 피라미드를 상자에 넣어"라고 명령하면, SHRDLU는 그 말을 이해하고, 실행하고, 심지어 "왜 그렇게 했니?"라는 질문에 이유까지 설명했습니다.
당시로선 경이로운 성취였습니다. 언어 이해, 추론, 계획이 한 시스템에서 작동했으니까요. 연구자들은 전략을 이렇게 정당화했습니다. "작고 단순한 세계(마이크로월드)에서 먼저 성공시키고, 점차 현실 세계로 확장하면 된다."
합리적으로 들리죠?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블록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가는 길은 '확장'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도약'이었다는 것 — 그걸 깨닫는 데 이 분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됩니다.
17. 낙관의 절정: 그들이 남긴 예측들
이 시대의 공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당대 최고 석학들의 공개 발언입니다. 1965년, 노벨상까지 받게 될 허버트 사이먼은 "20년 안에 기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1970년경 마빈 민스키는 한 세대 안에 인간 평균 수준의 지능을 가진 기계가 등장하고 'AI 문제'는 실질적으로 해결될 거라는 취지의 전망을 내놓았고요.
비웃을 일이 아닙니다. 당시 그들의 눈앞에선 매년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수학 증명, 언어 이해, 학습하는 기계 — 십 년 전엔 공상이던 것들이 연구실에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성공의 기울기를 그대로 연장하면 그런 예측이 나옵니다.
다만 그 기울기가 유지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했습니다. 작은 세계에서 통한 방법이 큰 세계에서도 통해야 한다는 전제. 그리고 그 전제가 무너지는 소리가, 황금기의 끝자락에서 들리기 시작합니다.
18. 이 시대의 방법론: 기호주의

잠깐 멈춰서, 이 시대 AI들의 공통 철학을 정리해 봅시다. 로직 시어리스트, GPS, SHRDLU — 이들은 모두 기호주의(Symbolic AI)라는 하나의 신념 위에 서 있습니다.
신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생각이란 결국 기호를 규칙에 따라 조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양이'라는 단어(기호)로 사고하고, 논리 규칙으로 추론하듯, 지능이란 기호 조작 시스템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기호와 규칙을 컴퓨터에 넣으면 지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1회차에서 배운 '규칙 기반 AI', 바로 그 세계관입니다.
주목할 점: 이 접근에는 '학습'이 없습니다. 지식은 데이터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직접 설계해서 넣는 것이었죠. "데이터에서 배우게 하자"는 로젠블랫의 퍼셉트론은 이 주류에서 비껴난 소수파였고, 심지어 기호주의 진영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두 진영의 이 긴장 관계가 이후 AI 역사 전체를 끌고 가는 엔진이 됩니다.
19. 기호주의의 빛과 그림자
기호주의의 강점은 분명했습니다. 추론 과정이 투명합니다.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 규칙을 따라가면 다 보이죠. 수학, 논리, 체스처럼 규칙이 명확한 세계에선 눈부시게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도 짙었습니다. 현실 세계는 규칙이 명확하지 않거든요. "새는 난다"는 규칙을 넣으면, 펭귄이 문제가 됩니다. "펭귄은 예외"라고 추가하면, 다친 새는요? 날개 잘린 새는? 현실의 상식을 규칙으로 다 적으려면 예외의 예외의 예외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걸 훗날 '상식의 벽'이라 부르게 됩니다.
또 하나의 그림자는 '조합 폭발'입니다. 블록 몇 개의 세계에선 가능한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볼 수 있지만, 현실 문제는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폭발합니다. 마이크로월드에서 현실로 가는 길이 막힌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이 두 그림자가 어떻게 첫 번째 AI 겨울을 불러오는지 — 그게 3회차의 이야기입니다.
20. 그 시대의 유산 1: 지금도 곁에 있는 기술들
"옛날이야기 재밌긴 한데, 그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죠?" 좋은 질문입니다. 놀랍게도 이 시대의 발명품들은 2026년의 여러분 일상 속에서 여전히 현역입니다.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찾는 탐색 알고리즘의 뼈대는 이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4회차에서 직접 배웁니다). 세무 프로그램과 각종 심사 시스템 속 규칙 엔진은 기호주의의 직계 후손이고요. 매카시가 AI 연구를 위해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 리스프(Lisp)의 사상은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속 컴퓨터 상대가 수를 읽는 방식의 원형도 이 시대의 게임 트리 탐색입니다.
1회차에서 배운 'AI 효과'를 떠올려 보세요. 이 기술들이 더 이상 AI라 불리지 않는 건, 실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성공해서 공기처럼 당연해졌기 때문입니다. 황금기는 끝났지만, 그 유산은 사라진 게 아니라 일상이 된 겁니다.
21. 그 시대의 유산 2: 일라이자 효과, 2026년

이 시대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기술이 아니라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일라이자 효과, 기억하시죠? 단순한 패턴 변환기에게조차 사람들은 마음을 투사했습니다.
그럼 2026년은 어떨까요. 지금의 AI는 ELIZA와 비교할 수 없이 정교하게 공감을 표현합니다. 그 결과, AI 동반자 앱과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고, AI와의 관계에 깊이 의존하는 현상이 사회적 논의 대상이 됐습니다. 60년 전 바이첸바움이 자기 비서에게서 목격한 그 현상이, 인류 규모로 확대된 겁니다.
바이첸바움 본인은 이 발견 이후 AI 비판자로 돌아서서, 기계에 판단을 맡기는 것의 위험을 평생 경고했습니다. 그의 경고에 동의하든 안 하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1회차의 오해 2("AI는 감정이 있다")에서 다뤘듯, AI의 공감 표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는 것은 이제 교양이 아니라 안전의 문제입니다. 그 앎의 출발점이 1966년의 이 작은 챗봇이었고요.
22. 절벽 앞에서: 1막의 끝
1970년대 초, 황금기의 하늘에 구름이 몰려듭니다. 약속했던 기계 번역은 실용 수준에 한참 못 미쳤고, 마이크로월드는 현실로 확장되지 않았으며, 퍼셉트론은 치명적 한계를 지적당한 상태였습니다. 연구비를 대던 정부 기관들이 묻기 시작합니다. "20년 안에 다 된다면서요. 그래서, 어디까지 왔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그리고 그 대답이 몰고 온 혹독한 계절 — 연구비가 끊기고, 'AI'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어가 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서 펼쳐집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자면, 이건 몰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겨울을 견딘 소수의 연구자들이 어떻게 봄을 준비했고, 그 봄이 어떻게 2012년의 대폭발로 이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3. 핵심 정리
오늘 배운 것을 세 줄로 요약합니다.
첫째, 1950년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정의 불가능한 질문을 "구별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가"라는 측정 가능한 질문으로 바꿨고(튜링 테스트), 이 질문 전환이 AI라는 분야의 정신적 출발점이 됐다.
둘째, 1956년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태어났고, 이후 황금기 동안 로직 시어리스트·GPS·ELIZA·SHRDLU 같은 성과와 함께 "한 세대 안에 인간 수준 지능"이라는 낙관이 절정에 달했다.
셋째, 이 시대의 주류는 "지능이란 기호 조작"이라는 기호주의였고, 학습하는 기계(퍼셉트론)는 소수파였다. 기호주의는 규칙이 명확한 세계에선 강했지만, 상식의 벽과 조합 폭발이라는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24. 용어 정리

튜링 테스트 — 심사자가 문자 대화만으로 기계와 인간을 구별하지 못하면 통과로 보는 지능 판별 실험. 원래 이름은 모방 게임.
다트머스 워크숍(1956) —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고 AI가 학문 분야로 출범한 여름 연구 모임.
기호주의(Symbolic AI) — 지능을 기호와 규칙의 조작으로 보고, 지식을 인간이 직접 설계해 넣는 초기 AI의 주류 접근법.
로직 시어리스트 — 수학 정리를 스스로 증명한, 최초의 AI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1956년의 프로그램.
퍼셉트론 — 1958년 로젠블랫이 만든, 뇌 신경세포를 본떠 데이터에서 학습하는 초기 기계. 현대 신경망·딥러닝의 조상.
ELIZA와 일라이자 효과 — 1966년의 최초 챗봇, 그리고 기계의 표면적 언어 능력에 인간이 마음과 이해를 투사하는 현상.
마이크로월드 — 블록 세계처럼 단순화된 가상 환경에서 먼저 AI를 성공시키려 한 연구 전략.
조합 폭발 — 문제가 커질수록 따져야 할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계산이 불가능해지는 현상.
25. 생각해볼 질문
오늘의 질문은 조금 도발적으로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AI 챗봇과 나눈 대화 중, 문득 "얘가 날 이해하네"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그 순간을 떠올려 보고, 오늘 배운 일라이자 효과의 렌즈로 다시 바라봐 주세요. 그 느낌은 어디서 왔을까요 — 기계의 이해에서, 아니면 나의 투사에서?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을 댓글로 나눠주시면, 흥미로운 사례는 다음 회차에서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6. 다음 회차 예고
다음 시간은 「AI의 역사 2: 겨울과 부활」입니다. 낙관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연구비가 끊기고, 연구자들이 떠나고, 'AI'라는 단어를 이력서에 쓰면 손해라던 시절 — 두 번의 AI 겨울이 옵니다. 그리고 모두가 외면한 신경망을 붙들고 겨울을 버틴 소수의 연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2012년 어느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터진 대폭발, 그리고 그 폭발이 오늘의 챗GPT와 클로드로 이어지는 이야기. 겨울은 길었지만, 봄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만나요!
이 포스트는 SVIL 연구소 「AI 기초 및 활용」 30회 시리즈의 2회차입니다. 하버드 CS50 AI, MIT 6.S191 등 공개 교육과정의 구조를 참고해 2026년 7월 기준으로 작성했으며, 모든 내용은 이미지 없이 본문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미지에는 내용을 설명하는 대체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