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초 및 활용 3회: AI의 역사 2 — 겨울과 부활

AI 기초 및 활용 3회: AI의 역사 2 — 겨울과 부활

SVIL 「AI 기초 및 활용」 시리즈 3회차입니다. 모든 내용은 이미지 없이 본문 텍스트만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오늘의 질문: 왜 최고의 아이디어가 40년을 기다려야 했을까?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딥러닝의 씨앗, 퍼셉트론이 1958년에 이미 존재했다는 걸 지난 회차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씨앗이 1958년에 뿌려졌는데, 꽃은 2012년에야 피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그 공백의 이야기입니다. 약속이 무너지고, 돈이 마르고, 'AI'라는 단어가 부끄러운 단어가 되었던 두 번의 겨울. 그리고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신경망을 붙들고 버틴 소수의 연구자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 지금 여러분이 쓰는 챗봇이 그 결말이니까요. 하지만 그 결말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나면, 지금의 AI가 다르게 보일 겁니다.

2. 지난 회차 연결: 절벽 앞에 선 낙관

2회차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1970년대 초, 황금기의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20년 안에 기계가 인간의 모든 일을 한다"던 사이먼의 예언, "한 세대 안에 AI 문제가 풀린다"던 민스키의 전망 — 그 시한이 다가오는데, 성과는 블록 세계라는 축소된 낙원에 갇혀 있었죠.

기호주의의 두 그림자, 기억하시나요? 상식을 규칙으로 다 적을 수 없다는 '상식의 벽', 그리고 현실 문제의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폭발하는 '조합 폭발'. 이 두 그림자가 이제 청구서가 되어 날아옵니다. 청구서를 보낸 곳은, 그동안 돈을 대준 정부였습니다.

3. 첫 번째 겨울: 라이트힐 보고서

밤의 오래된 연구소 내부. 늘어선 구형 컴퓨터 캐비닛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고, 깨진 천창으로 눈이 내려앉는 가운데 책상 위 램프 하나만 따뜻하게 켜져 있는 그림. 연구비가 끊기며 저물어가는 첫 번째 AI 겨울을 표현

1973년, 영국 정부의 의뢰를 받은 수학자 제임스 라이트힐(James Lighthill)이 AI 연구 전반을 평가한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결론은 냉정했습니다. 요지는 이랬죠 — AI는 장난감 문제에서만 성공했고, 현실 규모로 확장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 핵심 원인이 조합 폭발이다.

이 보고서 한 편으로 영국의 AI 연구비는 사실상 전면 중단됩니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요. 국방부 연구 지원 기관들이 "약속한 성과가 어디 있느냐"며 지원을 대폭 삭감한 겁니다. 기계 번역 프로젝트는 이미 1966년의 평가 보고서(ALPAC)로 예산이 끊긴 상태였고요. 황금기를 떠받치던 돈줄이 몇 년 사이 연달아 말라붙었습니다. 첫 번째 AI 겨울(대략 1974~1980년)의 시작입니다.

4. 퍼셉트론에 내린 서리

겨울은 기호주의만 덮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서리는 소수파였던 신경망 진영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서리를 뿌린 사람이, 얄궂게도 다트머스 멤버 마빈 민스키였습니다.

1969년, 민스키는 동료 시모어 페퍼트와 함께 『퍼셉트론』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책의 핵심은 수학적 증명이었어요. 단층 퍼셉트론은 XOR 같은 아주 단순한 문제조차 원리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 XOR이 뭐냐면, "둘 중 하나만 참일 때 참"이라는 기초 논리인데, 이걸 한 겹짜리 퍼셉트론으로는 절대 학습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여러 겹을 쌓으면(다층) 풀 수 있다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당시엔 다층 신경망을 학습시킬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어요. 신경망 연구비가 증발했고, 이 분야는 학계의 변방으로 밀려납니다. 퍼셉트론의 아버지 로젠블랫은 1971년 사고로 세상을 떠나, 자기 아이디어의 부활을 보지 못했습니다. 딥러닝의 씨앗이 땅속 깊이 묻힌 순간입니다.

5. 첫 겨울의 풍경

겨울의 풍경은 이랬습니다. 연구실이 축소되고, 대학원생들이 다른 분야로 떠나고, 학회가 쪼그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AI'라는 단어 자체가 기피 대상이 됐어요. 연구비 신청서에 인공지능이라고 쓰면 떨어진다는 말이 돌았고,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를 '정보처리', '패턴 인식', '지능형 시스템' 같은 다른 이름으로 포장했습니다.

1회차에서 배운 'AI 효과'의 씁쓸한 변형이죠. 그땐 성공한 기술이 AI 목록에서 빠졌다면, 이번엔 연구자들이 스스로 AI라는 이름을 지운 겁니다. 하지만 기억해 두세요 — 연구 자체가 멈춘 건 아니었습니다. 이름을 바꾼 채, 규모를 줄인 채, 연구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뜻밖의 곳에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6. 해빙: 지식이 곧 힘이다

1980년 전후, AI는 전략을 바꿔 부활을 시도합니다. 반성은 이랬어요. "범용 문제 해결사(GPS) 같은 만능 접근이 실패한 건, 지능의 핵심이 '추론 능력'이 아니라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의사가 명추리 때문이 아니라 방대한 의학 지식 때문에 진단을 잘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번엔 야망을 줄였습니다. 모든 문제가 아니라 한 분야만, 그 분야 최고 전문가의 지식을 통째로 컴퓨터에 옮기자. 이것이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입니다. 1회차에서 배운 규칙 기반 AI의 전성기 버전이죠. 그리고 이 현실적인 전략이, 놀랍게도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7. 전문가 시스템의 봄

수천 장의 작은 규칙 카드가 가지를 치며 아래로 뻗어 내려가는 거대한 빛나는 트리 구조. 그 아래에서 작은 사람 실루엣이 새 카드를 계속 밀어 넣고 있다. 전문가의 지식을 규칙으로 쌓아 올린 전문가 시스템과, 그것을 유지하는 인간의 노동을 표현

대표 사례 몇 가지만 보죠. 스탠퍼드의 MYCIN은 혈액 감염을 진단하고 항생제를 추천하는 시스템이었는데, 평가에서 실제 전문의들과 견줄 만한 성능을 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산업계에선 컴퓨터 주문 구성을 자동화한 시스템이 회사에 연간 수천만 달러를 절감해줬다는 성공담이 퍼졌고요.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엔 미국 대기업의 상당수가 전문가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검토했고, 전문가 시스템 전용 하드웨어(리스프 머신) 산업까지 생겨났습니다. 일본이 '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라는 국가 프로젝트로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자, 미국과 유럽도 질세라 대응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AI 산업 규모가 수십억 달러를 넘보던, 두 번째 봄이었습니다.

8. 지식의 병목: 봄이 짧았던 이유

하지만 이 봄엔 구조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전문가 시스템의 지식은 어떻게 들어갈까요? 사람이 전문가를 인터뷰해서, 규칙을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 넣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터집니다.

첫째, 지식 획득의 병목. 전문가의 감각을 명시적 규칙으로 바꾸는 건 지독하게 느리고 비쌉니다. 정작 전문가 본인도 자기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둘째, 유지보수 지옥. 규칙이 수천 개로 불어나면 하나를 고칠 때 어디가 깨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셋째, 취약성. 규칙에 없는 상황을 만나면 시스템은 우아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어이없이 무너집니다. 2회차에서 본 '상식의 벽'이 형태만 바꿔 돌아온 겁니다.

결정적으로, 이 시스템들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데이터가 쌓여도 스스로 나아지지 않고, 사람이 규칙을 더 넣어줘야만 했죠. 확장이 안 되는 기술 위에 세워진 산업 — 결말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9. 두 번째 겨울

1987년, 전문가 시스템 전용 하드웨어 시장이 무너집니다. 범용 PC와 워크스테이션의 성능이 급상승하면서, 비싼 전용 리스프 머신을 살 이유가 사라진 거죠. 하드웨어 회사들이 연쇄 도산했고,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에 실망한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 일본의 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채 종료됩니다. 정부 지원이 다시 삭감됐고, 'AI'는 또다시 과대약속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두 번째 AI 겨울(대략 1987~1990년대 중반)입니다.

두 번의 겨울에서 패턴이 보이시나요? 과대약속 → 과잉투자 → 기대 미달 → 신뢰 붕괴 → 자금 증발. 기술 자체가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겨울을 불렀습니다. 이 패턴은 잠시 후 2026년의 이야기에서 다시 소환하겠습니다.

10. 겨울의 역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겨울 동안에도 기술은 계속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었다는 겁니다. 탐색 알고리즘은 소프트웨어 곳곳에 들어갔고, 규칙 엔진은 금융과 행정 시스템에 자리 잡았으며, 음성 인식과 문자 인식은 조용히 상용화되고 있었죠. 다만 아무도 그것을 AI라 부르지 않았을 뿐입니다.

1회차의 AI 효과가 여기서 묘한 역할을 합니다. AI라는 간판이 무너진 덕분에, 오히려 기술은 간판 없이 실속을 챙기며 퍼져나간 거예요. 겨울은 분야의 '이름'을 얼렸지, '내용'을 다 얼리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중에서도 가장 깊은 땅속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씨앗 하나가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들을 만날 시간입니다.

11. 겨울을 견딘 사람들

한밤의 눈보라 속을 함께 걸어가는 세 사람의 실루엣. 가운데 사람이 신경망 노드 모양의 작게 빛나는 랜턴을 들고 있다. 모두가 외면한 신경망 연구를 붙들고 겨울을 견딘 연구자들을 표현

민스키의 책이 신경망에 서리를 내린 뒤에도, 이 접근을 포기하지 않은 연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커넥셔니스트(연결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지능은 기호 조작이 아니라, 수많은 단순한 단위들의 연결에서 창발한다"는 신념 — 뇌가 그렇게 작동하듯이요.

대표 인물이 영국 출신의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입니다. 신경망이 조롱받던 시절에 박사 학위 주제로 신경망을 골랐고, 주류 학계의 냉대 속에서도 수십 년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곁에 프랑스 출신의 얀 르쿤(Yann LeCun), 그리고 요슈아 벤지오(Yoshua Bengio)가 합류합니다. 훗날 '딥러닝의 대부들'로 불리며 컴퓨터 과학 최고 영예인 튜링상을 함께 받게 될 세 사람 — 2회차에서 튜링상이 왜 그 이름인지 배웠죠. 겨울을 견딘 사람들이 튜링의 이름이 붙은 상을 받는다는 것, 꽤 시적인 결말 아닌가요.

12. 1986년: 역전파의 재발견

겨울 한복판에서 결정적 돌파구가 열립니다. 1986년, 힌튼과 데이비드 러멜하트, 로널드 윌리엄스가 역전파(backpropagation) 알고리즘을 널리 알린 논문을 발표한 겁니다.

역전파가 왜 결정적이냐면, 민스키가 지적한 바로 그 문제 — "다층 신경망은 학습시킬 방법이 없다" — 를 푸는 열쇠였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아주 거칠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신경망이 답을 틀리면, 그 오차를 출력 쪽에서 입력 쪽으로 거꾸로 흘려보내며 "네 책임이 이만큼, 네 책임이 이만큼" 하고 각 연결의 잘못을 배분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기 몫만큼 조금씩 고칩니다. 이걸 수만 번 반복하면 다층 신경망이 학습됩니다. (자세한 원리는 13회차에서 안개 낀 산 비유로 제대로 다룹니다.)

이론의 족쇄가 풀렸습니다. XOR도, 훨씬 복잡한 문제도 다층이면 풀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축포는 터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컴퓨터로는 큰 신경망을 돌릴 수 없었고, 학습시킬 데이터도 부족했으니까요. 열쇠는 찾았는데, 문을 열 힘이 아직 없었던 겁니다.

13. 캐나다의 은신처

1990년대~2000년대, 신경망 연구는 다시 변방으로 밀렸습니다. 학회에서 신경망 논문이 줄줄이 거절당하던 시절이에요. 이때 뜻밖의 후원자가 등장합니다. 캐나다 정부의 연구 지원 기관(CIFAR)이 "당장 돈이 안 되어도 장기적 기초 연구를 지원한다"는 방침으로 힌튼 등의 연구를 계속 지원한 겁니다.

그래서 힌튼은 토론토 대학에, 벤지오는 몬트리올 대학에 자리 잡았고, 캐나다는 신경망 연구의 은신처가 됐습니다. 오늘날 토론토와 몬트리올이 세계적 AI 허브인 건 우연이 아니라, 겨울에 씨앗을 지킨 결과입니다. 2006년경 힌튼 팀은 깊은 신경망을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는 방법을 다듬으며 '딥러닝'이라는 이름을 밀기 시작합니다. 신경망이라는 낡은 간판 대신, 새 간판을 단 거죠. 이제 필요한 건 세상이 무시할 수 없는 한 방이었습니다.

14. 르쿤의 수표 읽는 기계

한편 얀 르쿤은 겨울에도 실전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그는 손글씨 숫자를 인식하는 신경망을 개발합니다. 이미지의 특징을 창문으로 훑듯 읽어내는 구조 — 나중에 CNN(합성곱 신경망, 14회차의 주인공)이라 불리게 될 설계입니다.

이 기술은 실제로 미국 은행들의 수표 자동 판독 시스템에 들어가, 한때 미국에서 유통되는 수표의 상당 부분을 읽었습니다. 신경망이 이미 상업적으로 일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도 학계 주류는 시큰둥했습니다. "작은 이미지의 숫자나 읽는 정도"라는 평가였죠. 컬러 사진 속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는 것 같은 '진짜' 이미지 인식은 신경망으론 어림없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그 중론이 얼마나 완벽하게 뒤집히는지, 이제 곧 보시게 됩니다.

15. 부활의 세 가지 재료

2000년대 후반, 겨울을 끝낼 세 가지 재료가 조용히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첫째, 데이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방대한 이미지·텍스트 데이터를 쏟아냈습니다. 신경망은 데이터를 먹고 크는 생물인데, 드디어 먹이가 생긴 거죠. 둘째, 계산력. 게임 그래픽을 위해 만들어진 GPU가 알고 보니 신경망 계산에 최적이었습니다. 수천 개의 단순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구조가 신경망의 행렬 연산과 딱 맞아떨어진 거예요. 게이머들 덕분에 AI가 부활했다는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셋째, 알고리즘. 역전파에 더해, 깊은 망을 안정적으로 학습시키는 기법들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재료는 준비됐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대를 만든 사람은, 힌튼도 르쿤도 아닌 한 젊은 교수였습니다.

16. 이미지넷: 무대를 만든 사람

수천 개의 작은 사진 타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이 저 멀리까지 뻗어 있고, 그 벽에 눈부신 번개 한 줄기가 내리꽂히며 빛의 파동이 퍼져나가는 그림. 이미지넷이라는 무대와 2012년 알렉스넷의 충격을 표현

2000년대 후반, 프린스턴(이후 스탠퍼드)의 페이페이 리(Fei-Fei Li) 교수는 남들과 다른 데 베팅합니다. 다들 더 나은 알고리즘을 좇을 때, 그는 더 나은 데이터가 열쇠라고 봤어요. 그래서 수년에 걸쳐 1,400만 장이 넘는 이미지에 일일이 이름표를 붙인 초대형 데이터셋, 이미지넷(ImageNet)을 만듭니다. 당시엔 "그 시간에 연구를 하지"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무모한 프로젝트였죠.

2010년부터는 이 데이터셋으로 연례 대회를 엽니다. 누구의 프로그램이 이미지를 가장 정확히 분류하는가 — 전 세계 연구팀이 겨루는 공개 시합장이 생긴 겁니다. 처음 두 해 동안은 전통적 기법들이 우승했고, 오류율은 25% 언저리에서 찔끔찔끔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이 옵니다.

17. 2012년: 대폭발

2012년 대회에 토론토 대학 팀이 출전합니다. 힌튼과 두 제자 —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일리야 수츠케버. 이들이 들고 나온 건 GPU 두 장으로 학습시킨 깊은 합성곱 신경망, 훗날 '알렉스넷(AlexNet)'이라 불리는 모델이었습니다.

결과는 학살에 가까웠습니다. 알렉스넷의 오류율은 약 15% — 2위와의 격차가 10%포인트가 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1~2%포인트 차이도 큰 뉴스였는데, 10%포인트라니요. 매년 찔끔 나아가던 그래프에 수직 절벽이 생긴 겁니다.

학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수십 년간 변방 취급받던 신경망이, 컴퓨터 비전의 최정예 기법들을 한 방에 눕혀버린 거예요. 다음 해부터 대회 상위권은 전부 딥러닝으로 도배됐고, 몇 년 뒤엔 오류율이 인간 수준 아래로 내려갑니다. 1958년에 뿌려진 씨앗이, 54년 만에 폭발하듯 꽃핀 순간 — AI 역사에서 이 순간을 '이미지넷 모먼트'라고 부릅니다.

18. 골드러시

그 뒤의 일은 눈사태처럼 진행됐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바이두 같은 거대 기업들이 딥러닝 연구자들을 쓸어가기 시작했어요. 힌튼의 작은 회사는 구글이 인수했고, 르쿤은 페이스북 AI 연구소의 수장이 됐습니다. 겨울에 논문이 거절당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업계에서 가장 몸값 높은 인재가 된 겁니다.

음성 인식, 기계 번역, 얼굴 인식 — 딥러닝이 손대는 분야마다 기록이 갈아치워졌습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에 음성 비서와 사진 검색이 쓸 만해진 게 정확히 이 시기입니다. 1회차에서 "하루 동안 만난 AI"를 추적했던 것 기억하시죠? 그 목록의 대부분이 이 골드러시의 산물입니다.

19. 알파고: 세계가 목격한 부활

대중이 이 부활을 실감한 결정적 장면은 2016년 서울에서 나왔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바둑 세계 최정상 이세돌 9단과 다섯 판을 겨뤄 4승 1패로 이긴 겁니다.

바둑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2회차에서 배운 조합 폭발의 끝판왕이거든요.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아서, 체스처럼 무식하게 탐색해서는 절대 정복할 수 없고, 그래서 "기계가 인간을 이기려면 수십 년 남았다"던 게임이었습니다. 알파고는 탐색에 딥러닝의 '직관'을 결합해 이 벽을 넘었습니다. (이 결합의 원리는 4회차와 11회차에서 나눠 배웁니다.)

특히 2국의 37수 — 인간 프로라면 두지 않았을 낯선 수가 명수로 판명되는 장면에서, 세계는 기계가 인간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두 번의 겨울을 지나온 분야가, 전 세계 생중계 앞에서 부활을 선언한 순간이었습니다.

20. 그리고 현재로: 트랜스포머에서 챗봇까지

부활 이후의 연대기는 빠르게 훑겠습니다. 2017년, "필요한 곳에 집중한다"는 어텐션 아이디어를 극대화한 트랜스포머 구조가 등장합니다(16회차의 주인공). 이 구조 위에서 언어모델들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고, 2022년 말 챗GPT가 공개되며 AI는 연구실을 넘어 전 인류의 일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2026년 7월 현재, 미국과 중국의 최신 모델들이 몇 주 간격으로 기록을 경신하고, 수조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모델이 공개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1회차에서 배운 그 지형이죠. 이 모든 것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 트랜스포머는 딥러닝이고, 딥러닝은 역전파로 배우는 다층 신경망이며, 그 뿌리는 1958년 로젠블랫의 퍼셉트론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챗봇과 나눈 대화는, 겨울을 견딘 씨앗의 68년 뒤 모습입니다.

21. 겨울에서 배우는 것: AI 사이클 읽는 법

옆에서 본 상승 나선형 길. 차가운 얼음빛 겨울 구간과 따뜻한 황금빛 여름 구간이 번갈아 이어지지만, 길 전체는 꾸준히 위로 올라가 밝은 정점을 향한다. 겨울과 봄을 반복하며 우상향해온 AI의 역사 사이클을 표현

자, 이제 이 역사에서 실전 지혜를 뽑아낼 차례입니다. 두 번의 겨울이 가르쳐주는 패턴 — 과대약속 → 과잉투자 → 기대 미달 → 신뢰 붕괴 — 을 렌즈 삼아 현재를 보면, AI 뉴스를 읽는 눈이 달라집니다.

2026년의 AI 붐에도 "세 번째 겨울이 오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있습니다. 투자 규모가 성과를 앞지른다는 경고와, 이번엔 기술이 이미 실제 매출과 생산성을 만들고 있으니 과거와 다르다는 반론이 맞서죠. 어느 쪽이 맞을지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주는 확실한 교훈이 하나 있어요. 겨울에도 기술의 실제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죽은 건 언제나 '과장된 기대'였지, '유용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실용적 태도는 이겁니다. 최상급 수식어("모든 것을 바꾼다", "곧 인간을 대체한다")엔 겨울의 기억으로 할인율을 적용하고, 조용히 일상에 스며드는 실제 쓰임새에 주목하기. 1회차의 '울퉁불퉁한 최전선'과 짝을 이루는, AI 시대의 생존 감각입니다.

22. 겨울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

마지막으로, 이 역사에는 사람에 관한 교훈도 있습니다. 오늘의 딥러닝 시대는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캐나다의 한 기관이 돈 안 되는 연구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힌튼이 조롱 속에 연구를 접었다면, 페이페이 리가 "데이터가 먼저"라는 비주류 베팅을 하지 않았다면 — 부활은 없었거나 한참 늦었을 겁니다.

주류의 합의가 틀릴 수 있다는 것, 장기적 기초 연구의 가치, 그리고 유행이 아니라 신념으로 방향을 정하는 소수의 힘. 이건 AI를 넘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어떤 기술이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을 때, 이 겨울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어쩌면 그 기술은 죽은 게 아니라, 자기만의 캐나다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23. 핵심 정리

오늘 배운 것을 세 줄로 요약합니다.

첫째, AI는 두 번의 겨울을 겪었다. 첫 겨울(1970년대)은 조합 폭발과 과대약속의 청구서였고, 두 번째 겨울(1980년대 말)은 전문가 시스템의 지식 병목과 산업 붕괴가 불렀다. 패턴은 같다 —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겨울을 만든다.

둘째, 겨울 동안 힌튼·르쿤·벤지오 등 연결주의자들이 신경망을 지켰고, 1986년 역전파로 이론의 족쇄가 풀렸으며, 데이터(인터넷)·계산력(GPU)·알고리즘 세 재료가 무르익어 2012년 이미지넷 대회에서 알렉스넷이 폭발했다.

셋째, 그 폭발이 골드러시와 알파고를 거쳐 트랜스포머와 오늘의 챗봇으로 이어졌다. 겨울의 교훈: 죽는 것은 과장된 기대이지 유용한 기술이 아니며, 주류의 합의는 틀릴 수 있다.

24. 용어 정리

3회차 개념 지도. 두 개의 깊고 차가운 계곡(두 번의 AI 겨울)을 지나 오른쪽 끝의 눈부신 정점(2012년 이후 딥러닝 시대)으로 상승하는 빛나는 곡선 경로와, 경로 위의 이정표 노드들

AI 겨울 — 과대약속과 기대 미달로 연구비와 관심이 급감한 침체기. 역사상 두 차례(1970년대, 1980년대 말) 있었다.

라이트힐 보고서(1973) — AI가 장난감 문제를 넘지 못했다고 평가해 영국 AI 연구비 중단을 부른 보고서.

XOR 문제 — 단층 퍼셉트론이 원리적으로 풀 수 없음이 증명된 기초 논리 문제. 신경망 첫 겨울의 방아쇠.

전문가 시스템 — 한 분야 전문가의 지식을 규칙으로 옮겨 담은 1980년대의 상업적 AI. 지식 획득 병목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연결주의(커넥셔니즘) — 지능이 단순한 단위들의 연결에서 창발한다고 보는, 신경망 기반 접근의 철학.

역전파(1986) — 오차를 출력에서 입력 방향으로 되짚으며 각 연결을 수정하는, 다층 신경망 학습의 핵심 알고리즘.

이미지넷 — 페이페이 리가 구축한 1,400만 장 규모의 이미지 데이터셋과 연례 인식 대회. 딥러닝 부활의 무대.

알렉스넷(2012) — GPU로 학습한 깊은 신경망으로 이미지넷 대회를 압도하며 딥러닝 시대를 연 모델.

이미지넷 모먼트 — 2012년의 대반전처럼, 한 분야의 판도가 단번에 뒤집히는 순간을 가리키는 표현.

25. 생각해볼 질문

오늘의 질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서 "한물갔다", "안 될 기술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나요? 오늘 배운 겨울의 렌즈로 그것을 다시 봐 주세요 — 그 평가는 기술의 본질적 한계에서 온 걸까요, 아니면 기대와 현실의 격차에서 온 걸까요? 혹시 그 기술에도 힌튼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진 않을까요? 여러분의 후보와 근거를 댓글로 나눠주세요. 흥미로운 사례는 다음 회차에서 함께 이야기하겠습니다.

26. 다음 회차 예고

역사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드디어 원리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첫 주제는 AI의 가장 오래된 무기, 탐색입니다.

내비게이션은 어떻게 수백만 갈래 길에서 1초 만에 최적 경로를 찾을까요? 딥블루는 어떻게 카스파로프의 수를 읽었을까요? 문제를 '지도'로 바꾸는 발상, 물결처럼 퍼지는 탐색과 한 우물을 파는 탐색, 그리고 '감'을 수학으로 바꾼 A* 알고리즘까지 — 4회차 「알고리즘과 탐색」에서, 여러분은 기계가 길을 찾는 방법을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다음 회차에서 만나요!


이 포스트는 SVIL 연구소 「AI 기초 및 활용」 30회 시리즈의 3회차입니다. 하버드 CS50 AI, MIT 6.S191 등 공개 교육과정의 구조를 참고해 2026년 7월 기준으로 작성했으며, 모든 내용은 이미지 없이 본문만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이미지에는 내용을 설명하는 대체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